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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인공지능 약사? 관건은 '사람약사'만의 일

관리자 2017-01-03 00:00:00 조회수 971

[DP스페셜]"고연봉 직업 양털깎이서 영감 얻자"...약사, 새역할 눈떠야




"약사가 곧 사라질 직업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한 의사의 자신만만한 발언에 약사 직능을 주로 취재해 온 기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2012년의 일이다. 어떤 근거가 있기에 저 의사 대표는 저리도 자신만만한가. '의사는 괜찮은데, 약사들은 어쩌니'라는 태도였다.

진원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맨 처음 '약사는 곧 사라질 직업'이라고 공표한 이가 누구인지.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라는 토마스 프레이의 연구결과가 가장 많이 나왔다. '2030년까지 전세계에서 20억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협적인 말도 한 학자다.

◆로봇이 대체할 약사 vs 인공지능이 대체할 심리상담가

자세히 보자. 그가 꼽은 '사라질 직업' 101개를 뜯어보면, 사라질 직업은 결코 약사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101개 직업 안에는 의사와 심리 상담가는 물론 교사, 저술가도 있다. 이 모든 직업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말이니, 토마스 프레이가 생각한 기준이 궁금해진다.

어느 직업이든 그 안에서 창의력과 기술이 섞인 비율에 따라 다채로운 그라데이션을 보이지 않는가. 다시 보면 그의 의도는 명확하다.

예컨대 '소설가'는 (지금으로써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웹 상의 정보를 수집해 문장을 만들어내는 '라이터'(writer)는 이제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토마스 프레이가 꼽은 '사라질 직업'들은 그 다채로운 직업군 중 단순 기술과 반복만으로도 가능한 직업들을 일컬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경계할 것은 약사가 속한 직업군이다. 다른 건강 관련 직업들을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발달에 영향받는 직업군에 넣고, 약사는 '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는가.

토마스 프레이 역시 약사를 '상담과 건강 관리'보다 '조제와 투약'을 하는 직업으로 분류한 것이다. 만약 약사의 주 업무가 '건강 상담과 관리'라 생각했다면 토마스 프레이는 로봇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으로 보지 않았을까.

 ▲ ('토마스 프레이' 사진 출처 : 네이버 인물 사전)
◆"미국 큰 병원 가보니, 약사가 한 명도 없더라"...진실은?

이미 선진국, 특히 미국 보건의료현장에서 기술, 로봇에 따른 약사인력 대체 현상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됐다.

미국 보건의료 환경에 밝은 삼육대 약학대 양재욱 교수는 "대학병원급 대규모 병원의 경우, dispenser 로봇(조제로봇)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고 항암제 등 정맥주사제를 조제하는 로봇도 일반화되고 있다"며 "체인 약국은 조제건수가 400건 이상인 약국에 자동조제기를 설치해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관 위드팜 부회장도 같은 의견이다. 박 부회장은 최근 위드팜 회원의 밤에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파급력을 설명했다.

그는 "약국에 엄청난 변화 있을 것이다. ICT, 인공지능, 무인자동차, 특히 사물인터넷(IoT)이 보편화되면 지금 약사들이 하고 있는 많은 역할이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그 시기가 조만간, 향후 5~6년 안에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바라보는 약국 현장은 5년 안에 조제 역할을 사물인터넷과 로봇이 대체할 전망이다.

박 부회장은 "유명 포털 임원이 CEO 대상 강의에서 '미국 5대 메이저 병원에 갔더니 약사가 1명도 없더라'라고 강의하고 있다"며 "한국의 약사 역할로 기계가 조제하는 현장을 봤기 때문에 '약사'가 안보였던 것이다. 실제 미국 약사 역할은 한국과 다른데도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양재욱 교수의 의견도 일치한다. 그는 "미국에서 약사 직능 다양화는 일찌기 시작됐다. 지금 대부분의 주에서 약사에게 일차진료와 처방을 할 수 있는 provider자격을 주고 있다"며 "그 외에도 약사 직역이 임상 위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월그린과 CVS같은 대형 드럭스토어 약사들은 예방주사를 주거나 환자의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역할로 점차 변모해 가고있다.

큰 병원 현장에 보이지 않던 약사들은 단순 조제가 아닌, 환자상담과 약력 관리를 위해 상담실에 있거나 임상을 위해 의사들과 회진을 도는 상황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약사의 역할'이 미국에서는 이미 달라져있는 것이다.

◆원격진료·화상투약기, 4차산업혁명 일환인가

그렇다고 변화할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포는 옳지 않다. '조제'만 하는 약사 직능이 곧 없어진다는 말은 곧, 다른 일을 하는 약사들이 많아진다는 뜻이고 결론적으로 직능 역할 확대의 계기로 볼 수 있다.

양 교수는 "4차산업 발전으로 약사 업무는 더 편해지고 신속·정확해 질 것이다. 조제오류와 같은 실수가 감소해 약사와 환자가 대화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도 더 많아 질 수 있지 않겠나"라며 "한사람의 약사가 할 수 있는 업무의 량은 분명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인터넷 네트워크 상 오류의 문제, 컴퓨터 해킹 등 전산 문제가 겉잡을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약사사회가 반대하고 있는 '원격 진료'와 '화상투약기'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미래 발전 산업의 일환으로 두 사업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 원격진료 현장(왼쪽)과 화상투약기(오른쪽)
정치적 사안과 논리를 배제했을 때, 약사들이 이러한 신 기술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기보다 수용할 것을 빨리 수용하고 그 안에서 약사 역할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양재욱 교수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멀리하고 배척하고만 있으면 이 제품들이 우리 약사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발전해 갈 가능성이 있다"며 "약사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우리의 생각과 의지들을 모아가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휴베이스 홍성광 대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안에서 약사의 역할을 찾을 때라는 의견을 내놨다.

홍 대표는 호주의 예를 들었다. 호주에서 연봉이 가장 높은 직업이 '양털깎이'인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땅이 넓고 노동력이 부족한 호주는 기계 산업이 아무리 발달해도 양털은 사람만이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시대가 바뀌고 트렌드가 바뀌어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약사직능도 이렇게 '사람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례로 현재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ATC를 예로 들었다. 1인약국들이 소형 ATC를 구입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약국은 자동화·기계화에 점차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기계의 조제, 투약 정확도도 높아지고 만족도도 높아진다. 기존 약사 업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양재욱 교수는 '이런 컴퓨터에게 약사자격증을 주는 것을 과연 소비자인 환자들이 원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미국 저명한 학자들의 글을 근거로 제시했다.

Beth Lofgren은 미국약사회 발간 Pharmacy Times에서 '컴퓨터나 로봇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정심, 협동심, 애정 같은 것을 가지지 못한다'고 답했다.

Hubert Dreyfus도 '컴퓨터가 아직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책에서 '컴퓨터는 아직도 생명, 따뜻한 감정, 융통성, 응급상황 대처능력, 최종 결정권, 도덕성 및 자유의사를 가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아무리 인공지능 등의 첨단기계가 발달한다 하더라도 최종적인 책임은 그 기계를 사용하는 약사에게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일선 약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기계에게 자리를 내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까. 약사들의 생각은 다음 편에 이어진다.
정혜진 기자 (7407057@dailypharm.com)